쓸쓸한 노년
쓸쓸한 노년
4월25일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습니다. 얼마전 부터 우리 집에 와 계신 처형을 모시고 분당 서울대병원에 가기 위해서 입니다. 처형이 우리 집에 오신 것은 대략 2주 정도 됩니다. 오랜 지병을 앓던 남편이 돌아가시고 병수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으실 줄 알았지만, 얼마 안있어 위암 판정을 받으셨고 75세의 나이에 본인도 병마와 싸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지만 고령의 나이에 대수술을 받아서인지 체중은 38킬로그램으로 줄고 몸은 뼈와 가죽만 남은 모습입니다.자식들은 모두 출가하여 바쁘게 살다보니 정작 본인이 아플 때는 옆에서 자신을 돌보아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병보다 더 깊은 마음의 병을 가져 왔고 우울증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언니가 안되었는지 매주 월요일이면 언니를 찾아가 하루를 함께 있다 오곤 했습니다. 그런 아내가 어느날 느닷없이 언니를 우리가 모시고 살면 어떠냐고 나의 의중을 물어 왔습니다. 나는 처음에 내가 불편하다고 반대를 했지만 언니가 몸도 아픈데 혼자 계시니 얼마나 외롭겠냐며 우리 아이들도 모두 나가 살고 방도 남으니 언니와 함께 살자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한참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20대부터 내 부모를 모신 것에 더하여 조카3까지 키웠고, 결혼 후에는 장인장모까지 모셨기 때문입니다. 내 부모야 당연히 모셔야 했지만 6남매 중 가장 큰형님이 딸 하나 낳고 일찍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 둘째 형님이 사고로 아들 둘을 낳고 역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숙명적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혼자 몸으로 아이들을 못 키우게 된 형수님들이 애들을 할머니 집으로 보내게 보내게 되니 부모를 모시던 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 것입니다.
어쨋든 세월이 흘러 지금의 착한 아내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조카들은 기본 교육을 마치고 임대아파트라도 하나씩 분양받아 모두 결혼하여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장인 장모님도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우리 집에 머무시다 돌아 가시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이제 처형을 다시 모시게 된다고 하니 망설여 질 수 밖에 없는게 제 입장이었습니다.어쨋든 숙명적인 일은 피할 수 없어 이리하여 또 처형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위암 수술 후 이상이 없는지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하여 분당 서울대병원에 도착해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어찌 사람들이 많은지 나도 환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시티 촬영을 하고 수면 위 내시경을 받으러 접수처에서 앉아 보니 위 수술로 몸이 처형처럼 마른 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80세 전후의 노부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시고 접수를 할머니가 하시는데 목소리부터 완전 할머니인 것입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하였습니다.
내 처형도 자식들이 있지만 옆에서 돌 볼 사람이 없어 우리 부부가 모시고 왔는데, 저 노부부는 갸냘프기 짝이 없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와서 접수를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늙으면 부부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시대에 자식이란 무엇인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분 할머니 할아버지! 서로 의지하며 남은 여생 행복하소서!!
수면 내시경을 찍고 회복한 처형을 모시고 사시던 집에 잠시 들러 집으로 왔습니다. 오신지 얼마 안되지만 요즘은 기분도 좋아지시고 식사도 잘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체중도 1.5킬로그램 느셨습니다. 2주 후에는 담당 의사의 진료를 받으러 다시 분당병원에 갈 것입니다.
홀어머니는 자녀 10을 키울 수 있지만, 10자식은 홀어머니 하나를 못 돌보는 세상입니다. 자녀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신들도 자녀를 키우다 보니 그리 됩니다. 사회 구조가 점점 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늙으면 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늙으면 부부 밖에 없습니다! 모두 배우자에게 잘 하시기 바랍니다. 병원에서 본 노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